최근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입학을 앞둔 학생을 맡게 되었습니다.

교재가 참 많았습니다. EBS 교재도 있고, 토익·토플 교재도 있었습니다. 만나기 전에는 영어를 일찍 시작해서 상당한 수준까지 공부한 학생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확인해 보니, 책의 수준과 학생이 꺼내 쓸 수 있는 지식 사이에 간격이 있었습니다.

to부정사, 동명사, 관계대명사. 들어본 이름은 많은데,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 자기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배운 것들을 어디에 놓고, 서로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가 정리되지 않았던 겁니다. 계속 공부해 온 학생에게 저는 책 한 권을 더 권하기 전에 이 부분부터 보고 싶었습니다.

두꺼운 문법책을 끝냈다는 것과 문법을 안다는 것

문법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하면 문법도 순서대로 머릿속에 들어갈까요?

그렇게 되는 학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의 순서가 곧 학생 머릿속의 정리 순서는 아닙니다. 처음 듣는 용어와 세부 규칙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배운 내용은 많아도 문장을 만났을 때 무엇을 꺼내야 하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수업에서 보고 있던 교재와 진도도 이 학생이 현재 이해하고 활용하는 수준에는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그 책 자체가 나쁜 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 이 학생에게 무엇이 먼저 필요한지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중학교 영어를 준비한다면 학교 시험에서 문장을 읽고, 어법을 판단하고, 직접 쓰는 일도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교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준비가 된 것은 아닙니다.

구구단처럼 꺼낼 수 있는, 문법의 핵심 한마디

저는 문법 이름을 들었을 때 먼저 핵심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구단처럼 꺼낼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설명 문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우라는 말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관계대명사는 이렇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관계(연결·접속)시키면서, 명사를 대신하는 말.”

문장을 연결하면서 명사를 대신하니까 ‘관계대명사’라고 생각해 보는 겁니다. 이제 예문으로 답해 봅니다. 아래는 설명을 위해 직접 만든 예문입니다.

I know a student who loves music.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한 학생을 알고 있다.

두 문장으로 나누면 I know a student.와 The student loves music.입니다. 두 번째 문장의 the student를 who로 바꾸어 앞 문장과 연결했습니다.

“who는 두 문장을 연결하면서, the student를 대신해요.” 이렇게 예문까지 말할 수 있으면 됩니다.

This is the book that I bought yesterday. 이것은 내가 어제 산 책이다.

This is the book.과 I bought the book yesterday.를 연결한 문장입니다. 여기서는 that이 두 번째 문장의 the book을 대신합니다.

그다음에 이런 질문을 붙일 수 있습니다.

“왜 첫 문장의 who는 그냥 뺄 수 없을까?” “두 번째 문장의 that은 생략할 수 있을까?”

학교 문법의 기본적인 제한적 관계절에서는 목적격 관계대명사를 생략할 수 있지만, 주격은 보통 그렇게 생략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생략 규칙만 따로 외우는 대신, 절 안에서 맡은 역할에 그 규칙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가주어도, 이름을 외우기 전에 역할부터

‘가주어’라는 말을 들어봤는지보다, 무엇을 대신 앞에 놓았는지 보는 편이 낫습니다.

아래도 직접 만든 설명용 예문입니다.

To explain the rule is difficult. 그 규칙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주어가 길어질 수 있으니, 다음처럼 표현할 수 있습니다.

It is difficult to explain the rule.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to explain the rule, 곧 ‘그 규칙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it이 먼저 주어 자리를 맡고 그 내용을 뒤에서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용법의 핵심을 **“긴 주어를 뒤로 보내고, it이 먼저 주어 자리를 맡는 것”**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it이 가주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핵심을 잡은 다음 실제 문장에서 어떤 쓰임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먼저 수납할 자리를 만들고, 세부 내용을 넣습니다

책장을 하나 떠올려 보세요.

책을 계속 사 오는데 어디에 어떤 책을 놓을지 정하지 않았다면, 나중에는 필요한 책을 찾기 어렵습니다. 수납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물건이 많다고 정리가 잘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문법의 핵심 키워드와 자기 말로 정리한 설명이 그런 수납 칸이 되어 준다고 봅니다. 이것을 학생 머릿속의 **‘기억의 방’**에 비유합니다.

관계대명사라는 방에는 ‘연결하면서 명사를 대신한다’를 먼저 놓습니다. 새로운 예문을 읽고 나면 주격·목적격, 생략 가능 여부 같은 내용을 그 자리에 연결합니다.

가주어라는 방에는 ‘먼저 자리를 맡는 it’을 놓고, 뒤에 오는 to부정사나 that절 등을 확인하면서 내용을 넓혀 갑니다.

분사구문이나 도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어만 더 모으는 대신, 원래 문장에서 무엇이 달라졌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부터 설명해 보는 겁니다.

세부 문법을 공부하지 말자는 뜻이 아닙니다. 핵심을 정리하고, 쉬운 문장에서 확인하고, 그 자리에 세부 규칙과 예외를 연결하자는 것입니다.

오늘은 책을 덮고, 세 가지만 확인해 보세요

초6·예비 중1 자녀가 있다면, 오늘 배운 문법 하나를 골라 이렇게 확인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1. 내 말로 설명하기 — “그 문법은 무슨 일을 하는 거야?”
  2. 쉬운 문장에서 찾기 — 실제로 어느 부분이 그 역할을 하는지 짚어 보기.
  3. 다른 문장에 적용하기 — 문장을 조금 바꾸어도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한마디는 외웠는데 문장에서 찾지 못한다면, 정리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아직 어려운 예외를 모르더라도 핵심을 설명하고 쉬운 문장에 적용할 수 있다면, 다음 내용을 연결할 출발점은 생긴 것입니다.

설명하지 못한다고 다그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대답이 바로 지금 어디부터 함께 정리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니까요.

교재가 많았던 그 학생에게도 제가 먼저 해주고 싶은 일은 같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더 쌓기 전에, 이미 배운 것들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

공부는 차곡차곡 쌓기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필요한 자리를 만들고, 배운 것을 그 자리에 끼워 넣는 일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공부는 차곡차곡이 아니라, 끼워넣기입니다.”


문법의 큰 틀을 먼저 살펴보고 싶다면 21가지 영어 문법 요약자료에서 익숙한 주제 하나를 골라 보세요. 읽고 끝내기보다 책을 덮고 설명한 뒤, 예문에서 그 역할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학생의 이름·학교·학원명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예문은 설명용으로 직접 만들었습니다.